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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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02. 월암동 세 입향조를 기리다, 달암재
1) 프롤로그대구시 달서구 월배는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성주와 대구에 속하기를 반복한 지역이다. 조선시대 월배지역 행정구역은 조암방과 월배방 두 곳이었다. 지금의 지하철1호선을 기준으로 북서쪽에 월성동을 중심으로 하는 조암방, 남동쪽에 상인동을 중심으로 하는 월배방이 있었다. 조선중기, 조암방에 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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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01. 조씨네 며느리 부처가 되다, 부덕불(婦德佛)
1) 프롤로그우리 고장인 달성군 논공읍 노이리(蘆耳里)는 북쪽으로는 달성군청 뒷산인 금계산과 남쪽으로는 약산 사이에 끼어 있는 골짜기마을이다. 골짜기 초입에서부터 돌끼·연화정·중말·갈실 등의 마을이 있는데, 이중 가장 안쪽 마을이 갈실이다. 갈실은 예로부터 갈대가 많아 갈대골·갈실이라 불렀으며 이를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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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00. 신기한 얼음창고, 현풍 석빙고
1) 프롤로그이번 겨울은 유난히 날씨가 포근하다. 2020년 새해가 밝았는데도 아직까지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요즘의 우리로서는 따뜻한 겨울이 좋다. 하지만 과거 고려·조선 같은 왕조국가시대라면 지금과 같은 따뜻한 겨울날씨는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석)빙고를 사용하던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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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98. 화산자락에 다시 세워지다, 화산서원
1) 프롤로그북쪽으로 대니산을 머리에 이고. 서쪽으로 낙동강을 끼고 있는 들판마을 달성군 구지면 화산리. 수년 전까지만 해도 화산리는 들판 사이 몇 몇 동산을 중심으로 취락이 형성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그런데 2013년부터 이 지역에 대규모 대구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기 시작, 2019년 현재 단지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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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97. 현풍곽씨 시조 이하 5위를 제향한 암곡서원
1) 프롤로그쇠뿔도 당김에 빼라는 말이 있다. 지난번 낙동서원에 이어 이번에도 서원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보기로 하자. 현재 대구에 남아있는 서원 25개소 중 절반이 넘는 16개소가 우리 고장인 달서구·달성군에 있다. 이중 아직까지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지 않는 서원은 암곡서원·화산서원·남계서원 3곳인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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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96. 덕동서원 업그레이드판 낙동서원
1) 프롤로그세상이 이제야 향교·서원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본 것 같다. 금년 7월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서원 9곳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재된 것도 그렇고, 문화재청 문화재활용사업 중 하나인 향교·서원활용사업을 봐도 그렇고, 내년부터 실시될 예정인 대구광역시 교육청 주관 초등학생 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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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95. 성주도씨 서재문중 열부들, 정열각
1) 프롤로그지난번에 이어 이번 이야기도 조선시대 우리고장을 살다간 여인들 관련한 유적 이야기다. 그것도 자신의 삶을 포기한 채 오직 남편과 시댁과 친정 문중을 위한 삶을 살다간 열부들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불편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효(孝)와 열(烈)은 조선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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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94. 효자 김처정과 열부 재령이씨, 효열각
1) 프롤로그대구광역시 달성군의 가장 남동쪽, 유가읍 달창저수지 동편에 본말리(本末里)라는 마을이 있다. 과거에는 이곳을 ‘말역’이라 불렀는데 지금처럼 본말리가 된 것은 이곳에 말역면사무소가 있어 ‘본(本)’ 말역이라 한 것에 유래한 것이다. 본말리 북동쪽은 비슬산 남쪽 줄기인 비둘산(646.8m)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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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93. 한훤당 김굉필 선생 묘소 이야기
1) 프롤로그며칠 전 도동서원을 주제로 방송출연에 응한 적이 있었다. 당시 담당 PD 손에 들려 있는 콘티를 보니 도동서원뿐만이 아니라 한훤당 김굉필 선생 묘소와 한훤당 셋째 따님 묘소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었다. 많은 것을 담아 가겠다는 의도였다. 500년 내력을 지닌 한훤당 선생 묘소는 오랜 역사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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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92. 곽재우 장군의 아버지 정암 곽월, 앙모재
1) 프롤로그우리는 효를 자식이 부모에게 행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유가에서 말하는 효의 의미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인 ‘자(慈)’ 역시 효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이 어떻게 효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번에는 임란의












